바롱이네

막걸리 4

서민의 시름을 달래주다, 태평추

"시름이 쑥 내려간다"봄비가 추적추척 내린다. 세상은 시끄럽고  서민들의 삶은 시름만 늘어난다. 태평추에 막걸리 한잔 기울인 추억이 떠오른다.예천 동성분식은  30여년 전통의 태평추전문 노포다. 주인 할머님이 혼자 운영하신다. 막걸리와 태평추를 주문하면 꽃 그림이 그려진 쟁반에 자박하게 끓인 태평추, 열무김치, 얼얼하고 칼칼한 삭힌 고추지, 꼬독꼬독 씹히는 무말랭이 등을 담아 내준다.노란 양은 냄비에 담긴 태평추에 막걸리 한잔 걸친다.사르르 녹는 보들보들한 메밀묵, 아삭하게 씹히는 시금한 묵은 김치, 고소한 돼지고기가 한데 어우러진다.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이 입안을 감친다. 태평성대다. 막걸리 한잔 더 들이켠다. 시름이 쑥 내려간다.이름이 어떻든, 유래가 어떻든지 알 바 아니다. 서민들 태평성대의 꿈은 ..

맛/경상북도 2023.03.23

살포시 쟁여둔 왕대포!

"왕대포 한잔에 담긴 정겨움"노포(老鋪)의 간판엔 세월의 더께를 간직한다. 간판이 낡거나 없는 곳도 있다. 그래도 알음알음 찾아온다. 그게 노포다. 진안 전북은행 진안지점 옆 골목에 연세 많으신 할머님이 운영하시는 대폿집이 있었다. 대폿집 문엔 메뉴만 쓰여 있을 뿐 골목 입구에 있는 낡은 간판이 이곳의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대폿집 가는 골목 낡은 간판엔 ‘왕대포 직매집’이라 쓰여 있었다. 예전 대폿집 뒤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직접 받아 썼기 때문이란 주인 할머님의 말씀이었다 현재 대폿집은 사라졌다. 옛 목욕탕 타일이 깔린 식탁에서 먹었던 왕대포 한잔은 간판과 함께 사라졌지만, 주인 할머니와 단골손님들의 정겨운 모습은 잊히지 않게 살포시 쟁여두었다.

맛/전라북도 2023.03.20

본전 생각이 나지 않는 맛

본전집은 삼척 시내 한 모퉁이에서 50여 년 연탄불에 구운 생선구이에 막걸리 한잔할 수 있었던 대폿집이었다. 현재는 영업하지 않는다. 주인 할머님이 연탄불에 임연수 구워 주시던 모습은 추억 속에 남았다. 자리에 앉아 임연수어구이와 막걸리 한 병을 주문했다. 무생채를 내준다. 막걸리 안주론 모자람이 없는 기꺼운 안주다. 두어 잔 먹고 있으면 주인 할머님이 짭짤하게 간이 밴 임연수어를 껍질 부분이 탈 정도로 연탄불에 구워 내준다. 술술 막걸리가 넘어가게 만드는 요물이다. "본전 생각이 들지 않는 맛" 뼈만 남은 임연수어구이와 빈 막걸리 통은 맛깔남의 흔적이다. 본전 생각이 나지 않는 맛이다. 이젠 먹을 수 없지만 내장이 기억하는 무의식의 맛이 되었다. "할머니와 생선구이" 할머니와 생선구이, 삼척 본전집 삼..

맛/강원도 2023.03.07

행복은 비싸지 않다?

대전역 부근 역전시장 안엔 노부부가 운영하셨던 선짓국집이 있었다.천 원 선지국밥과 선지국수에 왕대포 한잔 할 수 있던 곳이었다. 현재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선짓국 담으시던 주인 할아버지 뒷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때론 사람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에서 식당을 기억하곤 한다."행복은 비싸지 않다?" 검붉은 선짓국에 하얀 소면이 다소곳이 웅크린 선지국수에 빠알간 깍두기가 더해진다. 둘이 합해 천 원이다. 스테인리스 국그릇엔 뽀얀 국수보단 흐릿한 하얀빛 막걸리가 가득 담긴다. 왕대포 한잔이다. 천 원이다. 휘휘 저은 새끼손가락을 빨아먹은 후 엄지 손가락을 푹 담가 왕대포를 들이켠다. 세 개의 음식은 안주도 되고 밥도 되고 반찬도 된다. 이천 원에 혀와 뇌와 내장이 모두 기껍다. 행복은 비싸지 않다?

맛/대전 2023.03.02